2024. 7. 10. 16:08ㆍ∨/Research
칸트가 말아주는 '이 사회가 진정한 행복에 이르지 못한 이유'
진선미가 하나인 이유
삼각형이 궁극인 이유
우리가 아름다움에 열광하는 이유
why above all nothing can beat beauty
(는 글쓴이의 언어이다 Ꙭ̮)
진선미를 파헤치다 우연히 마주친 최광진 선생님의 미학 강의 필기 및 요약 정리!
소크라테스 (성인) vs 그의 제자 플라톤 (철학자)
차이는 실천한 사람 vs 실천과 별개, 이론을 정립한 사람
칸트 철학의 결론은, 진선미로 살아가라
고대에는 주로 진리에 대한 인식인 '진' 을 중심으로 살아갔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채 태어나서 먹고 자고 싸고를 반복하며 살다가 죽는다. 자신 안의 본성이 발현될 기회가 없다. 우리의 몸이 하드웨어라면 우리의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말로 표현하면 소프트웨어는 '얼' 이 되겠다. 보통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는 소프트웨어의 15% 정도를 쓰고 죽고, 평범한 사람들은 5% 정도만 쓰다 죽는다고 한다. 값비싼 스마트폰을 사놓고 정작 쓰는 기능은 별로 없는 것처럼 똑같다. 우리가 쓰지 못하고 있는 이런 능력을 '잠재능력' 이라고 한다. 잠재만 되어있고, 안 쓰고 못 쓰는 것이다.
우리(인간)의 하드웨어가 바깥쪽 큰 원이라 치면, 원의 중심에는 하늘에서 부여받은 본연지성 즉, 본성이 있다. 본성은 정확히 3가지 물결로 같은 면적으로 나뉘어 진, 선, 미가 차지하고 있다. 고대에는 진 > 선 > 미를 평등의 관계가 아닌 우열의 관계로 보았다.
진이라는 프로그램은 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지식으로 파악하는 작동 원리를 말한다. 분야로 치면 '과학'이다. 인과관계이다. 이 프로그램을 잘 작동시키지 못하면 미신을 숭배하게 되고, 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이라는 프로그램은 '공감' 이라고 보면 된다. 나와 타인 즉, 다른 대상을 나처럼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공감이라고 한다. 이 마음이 있기 때문에 '도덕'이라는 개념이 비롯된다. 다시 말해 인(仁)에 해당하며 인은 곧 사랑이고, 양심을 의미한다. 인간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선한 마음을 하늘에서부터 받아 내장되어 있다고 본다. 곧 다시 말해 성선설인데, 물론 성악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선이 올바르게 작동하는 사람에게는 법보다 위인 양심이 있어 법이 필요없게 된다.
미라는 프로그램은 다양한 것이 통일된 것이다. 각자 개성이 다른 여러 요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을 때, 우리는 거기서 '미'를 느낀다. 다양이 다양으로 존재하면 대립과 갈등이 일어나지만, 다양한 존재들이 각각의 역할을 달리하면서 하나의 지향점을 가질 때, 조화를 이루고 질서를 유지하게 되고 아름답게 된다. 조화는 자연의 섭리인데, 대전제는 개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르면 서로에게 보완이 되기 때문이다. 개성이 다르되, 지향점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부부가 똑같으면 맨날 싸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부부로 만나 서로 지향하는 곳이 같으면 완벽한 합을 이룰 수 있다. 오장육부가 다 다르지만, '나' 라는 하나의 유기체를 향해 작동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삼각형의 안정적인 체제를 우리는 '미' 라고 한다. 남과 다르고자 하는 본능은 당연한 것이다. 남을 따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긱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옷만 겹쳐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고, 개그맨들이 누군가를 흉내내면서 웃기는 것은 개성이 없어지면 열등함을 느끼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진은 과학 선은 종교 미는 예술이다. 과학, 종교, 예술 (문화)는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태어나는 프로그램과 같다. 사람에 따라 선천적으로 더 자주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다를 뿐이다. 자신의 기질과 전공이 거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선미는 3가지 모두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단, 각각의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할 때가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본성의 삼위일체 즉, 기본적으로 위상이 3개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고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상생의 협력 관계를 이루면서 하나이며, 작동은 세가지이나 본성은 하나라는 의미이다. 강의 하는 내가 있고, 아내의 남편인 내가 있고, 아들에게는 아빠인 내가 있다. 모두 나인데 선생님과 아빠인 나를 우열을 가릴 수 있겠는가? 가릴 수 없고,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의 시각인 진 > 선 > 미 를 우열의 관계로 파악하던 시각은 잘못되었다. 그 대표적인 잔재는 미인대회 1,2,3등을 각 진,선,미로 메긴다는 것인데 진선미에는 우열관계가 없으므로 고대 서양에서부터 내려져오는 관습적인 시각일 뿐이다. 차라리 우열을 가릴 거면 미가 가장 우위에 있어야 할 것이다.
삼위일체의 또다른 예로 인간에게는 영,혼,육이 있다. 원의 가장 안쪽부터 영, 중간에 혼, 가장 바깥에 육이라고 개념도를 그려서 진선미에 우열을 가렸듯이 영 > 혼 > 육의 우열관계를 통해 영이 가장 우열하고 육이 가장 열등하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영혼육 3가지는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하나라도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으면 '나' 자체에 문제가 생겨버린다. 즉, 진선미를 이해할 때 우열관계를 따질 수 없고 영혼육을 이해할 때 우열을 따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비교할 수 없는 걸 비교하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령도 마찬가지다. 성부는 작곡가 즉 창조주이다. 성자는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라 하고 창조주의 얼이 들어가 있는 존재로서 창조주가 창조한 정신을 그대로 실현해낼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성자만이 성부와 완벽한 채널링이 되어 소통이 가능하다. 힌두교에서는 성부가 브라마, 성자가 비쉬누, 성령은 시바로 삼위일체를 이룬다. 불교에서는 성부가 법신불로서 진리의 본체 비로자나불, 성자가 보살이 수행을 통해 후천적으로 깨달은 보신불, 성령은 응신불 또는 화신불로 석가모니 부처를 가리킨다. 우리나라 사상에서는 성부가 천, 성자가 지, 성령은 인이다. 각각의 위상이 있을 뿐 세가지는 모두 우열을 논할 수가 없다. 과학과 종교와 예술은 다시 말해,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밸런스는 어떨까?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만 봐도 '진' 에 치우쳐 있다. 학교에서 도덕이나 예술을 가르치는 밸런스가 이미 깨져있고, 우리 사회 역시 밸런스가 깨져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불행지수가 올라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진은 과학의 영역이므로, 물질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단, 진만으로는 인간은 행복에 절대 도달할 수 없다. 현상적 세계의 질서 속에 인과관계를 통해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 선을 추구하면 초월적인 세계와 연결되게 된다. 왜 우리가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 착할 때 행복을 누가 보장해주는가와 같은 형이상학적 고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를 소홀히 하면 자기 개성이 사라진다. 주체적이지 못하고, 남을 따라가게 될 뿐이다. 미가 없다면 자아실현이 없는 것이다.
"진은 출발점이고 선은 통로이며 미는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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